어슴프레하게 깼다. 온몸이 말이 아니게 쑤시고 피곤했다. 어제 생각이 났다. 차와 함께 강 한가운데로 쳐 박혔지...몽롱한 생각이 조금씩 떠오르며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내 몸을 자꾸 만지고 있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깨 있는 듯 했다. 어제 일이 거짓말같이 느껴졌다.
"깼어..?"
지나간 일 치곤 어째 너무 평범한 한 마디를 던졌다.
"아..."
흐지부지하게 말하곤 날 안았다. 자꾸 안고 쓰다듬는 게 ...서로의 체온이 느껴졌다.
밖은 이미 밝아진지 오래였다.
어제 녀석이 갑자기 덥친 덕택에 더 피곤했다. 피곤해서 짜증이 났으나 거의 반항할 힘이 없었다.
그냥 난 다시 잠이 들었다.

깨니까 어슴프레 한 게 저녁이 된 것 같다. 그는 종일 안 잔것 같다. 아직도 날 안고 있었는데 힘이 들어가 있다. 이윽고 내가 깬 것을 알았는지 손을 놓고 다시 날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 예전 그의 병실에서와 같이. 하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나를, 내 얼굴을 곰살스럽게 건드리고 있었다. 나의 손도 그의 얼굴 가까이로 갔다.
"어제.. 왜 죽기를 그만둔거야?"
탈출할 장비를 찾다가 그의 모습을 보았을 당시, 난 곧 알아챌 수 있었다. 멱살을 져 올린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것이 와 주었기 때문에. 난 그 때 머리가 새하얗게 되서 아무 사고도 할 수 없어져 버렸다. 경직되어 버렸다.
그런 그가 왜 얼마 후 갑자기 나에게 입 맞추곤 내 손에서 장비를 빼앗아 유리창을 깨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나를 만날 때부터 그가 이미 가지고 있던 소망을 왜 스스로 버렸는지.
나의 물음에 빨리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너..."
"나?"
"아.., 너야. 네 체온을 느끼고 싶어서..."
"에?"
"그것 뿐이야. 그 오랫동안 원하던 게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물론 지금도 원하는데. 그래서 열려져 있는 나의 문으로 편안히 들어갈려고 하는데, 옆에, 너무 탐스러운 게 있는거야. 열매나, 꿀 같은 거인가. 훗...  자꾸 가려는 데 그게 너무 가지고 싶어서, 너무 먹고 싶어서 차마 내 길을 못가겠는거야. 오래 전부터 가진 소망의 길이 열렸는데도... 난 늘 순간에 내가 원하는 걸 하는 걸 추구하잖아? 순간 널 안고 싶었어. 그 뿐이야. 단지 빨리 물 위로 올라가서 널 안는다는 생각 하나 밖에 없었어... 놀랍게도 집에 올 때까지 참았지만."
그가 느릿느릿 말했다.
"너...깨달음이라도 얻은 것 같군.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생긴거야."
"뭐야, 그렇게 거창한건가? 아직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아니, 하지만 그는 정말 편안해보였다. 날 만지고 있는 그는...
애초부터 죽음을 꿈꿔온 그. 그에게 있어 죽음이란 그렇게 대단한 것도, 무서운 것도 아닌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하나의 빛나는 탈출구였다. 그런데 거기서 눈을 돌리게 한 것이...결국은 나라는 것인가...
너무나 분명했다. 내가 없으면 당연히 그는 죽을 것을.
그의 길을 보류하는 단 하나의 존재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져서 그가 다시 자신의 길로 걸어가기 시작하게 된다해도, 그는 나를 원망하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난 어깨가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내 손에 달려 있는 하나의 생명 때문에.
그가 다시 나를 안았다. 따뜻하다. 이게 바로 그가 집착하는 단 하나의 것이다. 그가 그 때 자신의 길을 선택하여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됬을까? 난 내가 그를 구출하거나 함께 죽음을 택했으리라고 장담은 못한다. 난 그와는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처음 끌린 계기는 그에겐 '생존' 혹은 그가 하찮게 여기는 것이지만 '목숨'에 연결되지만, 나는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난 단순히 기쁘다. 살아났기 때문에, 연인도 함께, 죽지 않았기 떄문에, 그 모든 보통 사람이 느끼 듯 기쁜 것이다. 어찌되었던간에 말이다.
새삼 '보통'이 아닌 '나의 연인'이 안쓰러웠다.
"배 안 고파?"
"응..난 별로. 그러고보니 어제 운동 많이 했지...어제 ..피곤하지? 좀 심하게 해버려서"
"그것도 어느 정도 참은 거 아냐? 너도 많이 피곤해있었기 때문에. 그 땐... 내가 말렸다고 안 했겠냐?"
"밥... 음 나가기 싫어 시켜먹자"
"그러지"
정보지를 뒤적거려 전화를 거는 중에도 여전히 날 안은 손은 안 풀렸다.
"이 녀석 밥먹을 때도 붙어있을지도, 아니 화장실까지 따라올지도.."

다행히, 조용히 밥을 먹었다.
"굉장한 새해를 맞이 했군"
"아..."
"오늘은 조용히 자자. 나 몸이 아직 쑤셔. 내일 하루 남았으니 온천이나 가서 풀고 오자고"
"뭐야... 들켰군"
"근데 옷은 왜 벗기냐...;;"
"벗고 자자. 옷은 촉감이 안 좋아.. 왜 흥분할 것 같아?"
"죽어"
피곤했는지 종일 잤는데도 밤에 금방 잠이 들었다. 마지막 휴가나 잘 써야지...





(1998~2000)

Posted by hyun현
: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64)
(13)
그림 (2)
기타 (44)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태그목록

달력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