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구려 양주병이 반 정도 찰랑이며 가방 속에서 빼꼼이 삐져나와 있었다. 기억의 편린들을 맞추어 보다가 어딘가 잊어버린 조각들을 찾아본다. 나는 동굴 같이 어두운 바의 귀퉁이에 있다.
그러고 보니 그 때 마신 양주는 달콤하고 나른하면서도, 역한 화학약품 냄새가 없는 고급양주였다.. 그 뒤에, 아니 그 전에 마신 병이 내 가방에 들어 와 있었는가
애틋한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어딘가 술집에서 글을 남겼다. 형이상학적 즐거움이 느껴지는 글자글자가 새겨진 테이블 위에 우리도 무언가를 적었다.
붉은...
붉은 초롱이 넘실거리는 거리로 들어 섰다. 기억의 흐름을 넘실거리는 붉은 물결에 실려,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찾는다.
어제.. 당신이었지요?
아니요 저는 당신을 처음 보는데요
이상하다...
그의 손이 나의 왼쪽 옆구리를 꽉, 쥐었다. 온 손으로 압박하는 그의 손이 나의 몸 안으로 빠져나가 듯 나를 압박한다. 융합의 고통은 환희의 시작이다. 붉게 남은 그의 손자국은 현존의 상징이다.
삐쭉이 튀어나온 양주병의 세심한 세공은 그것의 가격을 말해준다. 황옥빛 액체는 넘실넘실 어젯밤의 흥분을 조용히 상기시킨다.
따뜻한 눈이 나를 주시했다. 약간 감긴 눈이 나를 보고 웃었다. 얼굴..은 기억이 없다.
아니다, 나의 옆구리에 붉은 흔적은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다.
수족관의 금붕어는 사실 동그란 눈을 하고 끊임 없이 밖을 향애 소리치고 있다. 그러나 밖의 구경꾼에게도 뻐끔거리는 물방울 밖에 보이지 않는다. 밖은 무음만을 듣는다.
왼손 손목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서 차가운 땅을 적시고 있다. 그 옆의 깨진 소주병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황옥빛으로 변해간다. 세심한 세공은 금이가고 흙이 묻은 자국으로 변해간다.
차가운 땅바닥이 따스한 붉은 빛으로 깔리고. 하늘 위 붉은 물결은 현란하게 춤추며 식어가는 몸뚱아리를 감싼다.
따스해진다.. 다음 눈을 뜰 때는 남을 술병 대신 당신이 나의 곁을 지키고 있을 테니...
(2007. 여름)